2025-09-11 23:50

  • 인간은 이익과 손실을 절대적 기준이 아닌, 특정 ‘기준점’을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평가한다.

  • 인간은 동일한 크기의 이익에서 얻는 기쁨보다 손실에서 느끼는 고통을 약 2배 이상 크게 느껴, 손실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 인간은 확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희박한 확률은 과대평가하며 거의 확실한 확률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인간의 비합리적 선택을 파헤치다 전망이론 완벽 핸드북

우리는 스스로를 합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선택의 순간에 기대되는 이익(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결정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10만 원을 얻었을 때의 기쁨과 10만 원을 잃었을 때의 고통은 정말 같은 크기일까? 1%의 당첨 확률을 우리는 정말 1% 그대로 받아들일까?

이러한 인간의 비합리적이고 비일관적인 선택의 비밀을 파헤친 혁명적인 이론이 바로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이다. 행동경제학의 문을 활짝 연 이 이론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에 의해 1979년 세상에 등장했으며, 카너먼은 이 공로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 핸드북은 전망이론이 왜 만들어졌는지, 어떤 구조로 우리의 선택을 설명하는지, 그리고 실생활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총망라하여 안내한다.

1. 전망이론의 탄생 배경: 전통 경제학에 던진 질문

전망이론 이전, 경제학의 주류는 ‘기대효용이론(Expected Utility Theory)‘이었다. 이 이론은 인간을 완벽하게 합리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 가정한다. 즉,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총자산이 많아지는 방향으로, 기대되는 효용을 가장 극대화하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실제 인간의 선택이 이 모델과 다르다는 것을 수많은 실험을 통해 발견했다. 그들이 던진 대표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상황 A

  1. 확실하게 100만 원을 받는다.

  2. 50% 확률로 200만 원을 받거나, 50% 확률로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상황 B

  1. 확실하게 100만 원을 잃는다.

  2. 50% 확률로 200만 원을 잃거나, 50% 확률로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기대효용이론에 따르면, 두 상황 모두 1번과 2번 선택지의 기댓값은 동일하다 (상황 A: 100만 원, 상황 B: -100만 원). 따라서 어떤 것을 선택하든 합리적으로는 차이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사람들은 상황 A에서는 압도적으로 1번(확실한 이익)을 선택하고, 상황 B에서는 2번(위험 감수)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인간이 이익 앞에서는 위험을 회피하고(risk-averse), 손실 앞에서는 위험을 추구하는(risk-seeking) 비대칭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망이론은 바로 이러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선택 패턴을 설명하기 위해 탄생했다.

2. 전망이론의 핵심 구조: 가치 함수와 확률 가중 함수

전망이론은 사람들이 선택 대안을 평가하는 과정을 두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 편집 단계 (Editing Phase): 선택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단순화하고 부호화하는 단계.

  • 평가 단계 (Evaluation Phase): 편집된 선택지를 평가하여 가장 가치가 높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하는 단계.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평가 단계의 두 가지 핵심 요소인 ‘가치 함수’와 ‘확률 가중 함수’이다.

2.1 가치 함수 (Value Function): 이익과 손실의 비대칭성

가치 함수는 사람들이 이익과 손실을 어떻게 주관적으로 느끼는지를 보여주는 그래프다. 전통 경제학의 효용 함수가 직선에 가까운 우상향 곡선인 반면, 전망이론의 가치 함수는 S자 형태의 독특한 모양을 가진다.

이 S자 곡선에는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이 숨어있다.

1) 기준점 의존성 (Reference Point Dependence)

사람들은 절대적인 부의 총량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준점(reference point)으로부터의 변화를 통해 이익과 손실을 인식한다. 이 기준점은 현재 나의 자산 상태, 혹은 기대치 등이 될 수 있다.

  • 비유: 연봉이 5천만 원인 사람이 1억 원을 벌게 되면 ‘5천만 원의 이익’으로 느끼지만, 원래 연봉이 2억 원이던 사람이 1억 원을 벌게 되면 ‘1억 원의 손실’로 느낀다. 결과는 ‘1억 원’으로 동일하지만, 기준점이 다르기 때문에 느끼는 가치는 하늘과 땅 차이다.

2) 손실 회피성 (Loss Aversion)

가치 함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손실 영역의 그래프 기울기가 이익 영역보다 훨씬 가파르다는 점이다. 이는 동일한 금액이라도 이익에서 얻는 기쁨보다 손실에서 느끼는 고통이 훨씬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에 따르면 그 고통은 약 2~2.5배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비유: 길에서 1만 원을 주웠을 때의 기쁨보다, 지갑에서 1만 원을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이 두 배 이상 더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익을 얻으려는 노력’보다 ‘손실을 피하려는 노력’을 더 강하게 한다.

3) 민감도 체감성 (Diminishing Sensitivity)

그래프를 보면 이익이든 손실이든, 기준점에서 멀어질수록 곡선의 기울기가 완만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변화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에 대한 민감도는 점차 둔해진다는 의미다.

  • 비유: 10만 원을 벌었을 때의 기쁨은 0원에서 10만 원이 되었을 때 가장 크다. 하지만 이미 1,000만 원을 번 상태에서 추가로 10만 원을 더 버는 것은 처음만큼 기쁘지 않다. 손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1,000만 원을 잃은 사람이 추가로 10만 원을 더 잃는 것은 처음 10만 원을 잃었을 때만큼 고통스럽지 않다.

2.2 확률 가중 함수 (Probability Weighting Function): 확률의 주관적 왜곡

사람들은 확률을 객관적인 수치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주관적으로 왜곡해서 인식한다. 확률 가중 함수는 이러한 왜곡 현상을 설명한다.

1) 낮은 확률의 과대평가

사람들은 실제로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희박한 확률(예: 0.1%, 1%)을 실제보다 훨씬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심리가 바로 ‘로또’ 구매로 이어진다. 당첨 확률이 극히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 내가?‘라는 기대로 실제 확률보다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2) 높은 확률의 과소평가

반대로, 거의 확실에 가까운 높은 확률(예: 99%)은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99% 안전’이라는 말보다 ‘1% 위험’이라는 말에 더 신경 쓰는 심리가 여기에 해당한다. 99% 확률의 이익은 ‘거의 확실한’ 것이 아니라 ‘혹시나 안 될 수도 있는 1%의 불확실성’ 때문에 그 가치가 깎여나간다.

이 두 가지 특성 때문에 확률 가중 함수는 S자를 옆으로 눕힌 듯한 역 S자 형태를 띈다.

3. 전망이론의 실제 적용 사례

전망이론은 마케팅, 투자, 정책 등 우리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의 선택을 유도하는 강력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1) 마케팅: 프레이밍 효과 (Framing Effect)

동일한 내용이라도 어떤 기준점을 가지고 어떻게 표현(frame)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이 달라지는 현상.

  • 사례 1: ‘지방 10% 함유’ 고기보다 ‘살코기 90%’ 고기가 훨씬 더 잘 팔린다. 전자는 ‘지방’이라는 손실 프레임을, 후자는 ‘살코기’라는 이익 프레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 사례 2: ‘수술 후 생존율 90%‘라고 말하는 의사와 ‘수술 후 사망률 10%‘라고 말하는 의사 중 환자들은 전자를 훨씬 더 신뢰하고 수술을 결정할 확률이 높다.

2) 투자: 처분 효과 (Disposition Effect)

손실 회피 심리 때문에 투자자들이 보이는 비합리적인 행태.

  • 사례: 주식 투자 시, 이익이 난 주식은 ‘더 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보다 ‘다시 떨어져서 이익을 잃을 수 있다’는 손실 회피 심리가 작용하여 너무 빨리 팔아버린다. 반면, 손실이 난 주식은 ‘손실을 확정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언젠가는 오르겠지’라며 계속 보유하는, 이른바 ‘존버’를 택한다. 이는 이익 구간에서는 위험 회피적, 손실 구간에서는 위험 추구적으로 변하는 가치 함수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3) 공공 정책: 디폴트 옵션 설정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바꾸기보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를 활용하여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

  • 사례: 장기기증 동의율을 높이기 위해, ‘기증을 원하면 서명하라(Opt-in)’ 방식보다 ‘기증을 원하지 않으면 거부 서명을 하라(Opt-out)’ 방식을 기본값(Default)으로 설정한 국가들의 동의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후자는 장기기증을 기준점으로 설정하여 사람들이 ‘거부’라는 행동을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고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4. 심화: 기대효용이론과의 비교 및 한계

구분기대효용이론 (Expected Utility Theory)전망이론 (Prospect Theory)
인간관합리적 인간 (Homo Economicus)제한적으로 합리적인 인간
가치 판단 기준절대적 부(Wealth)의 총량기준점(Reference Point)으로부터의 변화
함수 형태부드러운 우상향 곡선S자 형태의 가치 함수
손실/이익대칭적으로 평가비대칭적 평가 (손실을 2배 이상 크게 인식)
확률 판단객관적 확률을 그대로 반영주관적으로 왜곡된 확률 (확률 가중 함수)
이론의 성격규범적 이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기술적 이론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가)

물론 전망이론도 완벽하지는 않다. 기준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부족하고, 후회나 실망 같은 감정적 요소를 완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후 이러한 단점을 보완한 ‘누적 전망이론(Cumulative Prospect Theory)’ 등이 등장하며 이론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결론: 비합리성 속에서 합리성을 찾아서

전망이론은 인간이 결코 컴퓨터처럼 모든 것을 계산하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님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우리는 기준점에 따라 울고 웃으며, 얻는 기쁨보다 잃는 고통에 더 크게 반응하고, 확률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감정과 직관의 존재다.

이 이론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학 지식을 하나 더 쌓는 것을 넘어, 우리 자신과 타인의 선택을 더 깊이 이해하는 창을 얻는 것과 같다. 마케터의 교묘한 프레임에 속지 않고, 투자 실패의 함정에서 벗어나며,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첫걸음은 내가 얼마나 ‘비합리적’일 수 있는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전망이론은 바로 그 시작을 위한 가장 강력한 핸드북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