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1 22:38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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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발효된 OBBBA(P.L. 119-21)는 2017년 트럼프 감세안을 영구화하고 대규모 국방 예산을 증액하는 포괄적 법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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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 소득 공제 등 개인에게 일부 혜택을 주지만, 메디케이드와 푸드스탬프 같은 핵심 복지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수혜 자격을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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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의 IRA 친환경 정책을 폐기하고 화석 연료를 장려하며, 강력한 국경 통제와 이민 단속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
미국을 뒤흔든 OBBBA 법안 완벽 분석 핸드북 P.L. 119-21
2025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맞춰 하나의 거대한 법안이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발효되었다. 공식 명칭은 공법 제119-21호(Public Law 119-21). 하지만 세상은 이 법을 ‘크고 아름다운 단일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 이하 OBBBA)‘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이 이름은 법안의 성격을 정확히 꿰뚫는다. 단 하나의 법안 안에 세금, 복지, 국방, 이민, 에너지 등 국가의 거의 모든 핵심 정책을 담아낸, 그야말로 거대하고 야심 찬 입법이기 때문이다.
이 핸드북은 미국 사회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OBBBA의 탄생 배경부터 핵심 구조, 그리고 우리 삶에 미칠 영향까지 모든 것을 깊이 있게 분석한다. 이 법안은 단순한 정책의 조합이 아니라, 한 시대의 철학이 담긴 청사진과도 같다.
1부 만들어진 이유: 왜 OBBBA는 탄생했는가
모든 거대한 변화는 시대적 요구와 정치적 동력의 결합으로 탄생한다. OBBBA 역시 마찬가지다. 이 법안의 등장은 2020년대 중반 미국이 마주한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이해해야만 그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가. 2025년의 만료 시한, 감세의 운명
OBBBA 탄생의 가장 직접적인 도화선은 2017년 제정된 ‘세금 감면 및 일자리 법(Tax Cuts and Jobs Act, TCJA)’, 일명 ‘트럼프 1기 감세안’이었다. 이 법안의 개인 소득세 감면 등 핵심 조항 대부분은 2025년 말에 자동으로 효력이 사라지는 ‘일몰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다. 만약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2026년부터 수많은 미국인의 세금 부담이 급증하는 ‘세금 절벽(Tax Cliff)‘이 현실화될 상황이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를 좌시할 수 없었다. 감세는 행정부의 핵심 경제 철학이었고, 지지층을 결집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따라서 TCJA의 영구화는 단순한 경제 정책을 넘어 행정부의 정체성과 직결된 최우선 과제였다.
나. ‘예산 조정’이라는 마법의 지팡이
하지만 당시 상원은 어느 한쪽도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지 못하는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일반적인 법안 통과에 필요한 60석의 찬성(필리버스터 저지선)을 확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여기서 등장한 묘수가 바로 ‘예산 조정(Budget Reconciliation)’ 절차다. 이 절차는 예산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법안에 한해,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고 단 51표의 찬성만으로 상원을 통과시킬 수 있는 특별한 경로다. 행정부와 여당은 OBBBA를 예산 관련 법안으로 규정하고, 이 ‘마법의 지팡이’를 휘둘러 수많은 정책을 하나의 거대한 패키지로 묶어 통과시키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는 정치적 반대를 우회하고 국정 과제를 일괄 타결하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다. 정책 기조의 전면적 전환
OBBBA는 단순히 세금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전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정책 기조를 전면적으로 뒤집으려는 의도가 법안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다. OBBBA는 IRA의 근간을 이루는 전기차 보조금, 청정에너지 세액공제 등 친환경 정책 예산을 대거 삭감하거나 조기 종료시켰다. 대신 화석 연료 생산을 장려하고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복지 정책에 있어서도 ‘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 지원), 푸드스탬프(SNAP, 저소득층 식품 지원) 등 사회안전망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수혜자에게 근로 의무를 부과하는 등 자격 요건을 대폭 강화했다. 이는 복지를 시혜가 아닌 자립의 도구로 보아야 한다는 철학적 전환을 의미했다.
2부 핵심 구조: OBBBA는 무엇을 담고 있는가
OBBBA는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법안을 크게 네 가지 핵심 영역으로 나누어 그 뼈대를 살펴보자.
가. 제1영역: 세금 정책의 대전환
구분 | 주요 내용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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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소득세 | 2017년 TCJA 감세안(10%~37% 세율) 영구화 | 2025년 일몰 예정이던 조치 연장 |
팁, 초과근무 수당 소득 공제 신설 | 연간 한도 설정, 2025-2028년 한시 적용 | |
미국산 신차 구매 시 대출 이자 공제 | 연간 최대 1만 달러 | |
노년층(65세 이상) 추가 공제 | 1인당 6,000달러 | |
주·지방세(SALT) 공제 한도 상향 | 1만 달러 → 4만 달러로 한시적 인상 | |
가족 지원 | 자녀 세액공제(CTC) 영구화 및 증액 | 1인당 2,200달러로 인상 (2025년 기준) |
‘트럼프 계좌’ 신설 | 자녀 명의의 비과세 성장 저축 계좌 | |
법인세 | 법인세 관련 TCJA 감세 조치 영구화 | QBI 공제, 보너스 감가상각 등 |
신설/변경 | 해외 송금에 1% 세금 부과 | |
대학 기부금 투자 소득세 인상 | ||
상속세 기본공제 한도 확대 영구화 |
OBBBA의 심장은 단연 세금 정책이다. 이는 단순히 세금을 깎아주는 것을 넘어, 돈의 흐름을 바꾸고 경제 주체들의 행동을 유도하려는 정교한 설계에 가깝다. 특히 팁과 초과근무 수당에 대한 공제는 특정 지지층을 겨냥한 맞춤형 혜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나. 제2영역: 사회안전망의 재편
OBBBA가 한쪽에서 감세를 통해 돈을 풀어주었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복지 지출을 대폭 줄여 재정 균형을 맞추려 시도한다. 그 칼날은 미국의 가장 취약한 계층을 지탱해 온 사회안전망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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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케이드(Medicaid) 혁신(?): 향후 10년간 1조 달러 이상의 예산이 삭감된다. 역사상 처음으로 수혜자에게 월 80시간 이상의 근로 요건이 부과되었으며, 합법적 이민자라도 수혜 자격이 제한되는 등 문턱이 크게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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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스탬프(SNAP) 개혁: 근로 의무 부과 대상 연령이 54세에서 64세로 상향 조정되었다. 또한, 프로그램 운영에 필요한 행정 비용의 주 정부 부담률을 기존 50%에서 75%로 올려 지방 정부의 재정 압박을 가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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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정책 변경: 연방정부가 메디케어를 통해 의약품 가격을 협상할 수 있는 권한을 일부 축소하여 제약사의 입지를 강화했다. 또한 요양 시설의 최소 인력 배치 기준 시행을 막아 관련 업계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다. 제3영역: 국경과 국방의 강화
OBBBA는 ‘강한 미국’을 구현하기 위해 국경과 국방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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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통 국경: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예산을 2029년까지 1,000억 달러 이상으로 증액하여 미국 내 최대 규모의 법 집행 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는 불법 이민자 단속과 추방을 강화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다. 국경 장벽 건설과 국경순찰대 인력 증원을 위한 예산도 대규모로 편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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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국방력: 국방 예산을 대폭 증액하여 핵 억제력, AI 기반 자율 무기 시스템(자폭 드론 등), 인도-태평양 지역의 작전 능력 향상에 집중 투자한다. 이는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라. 제4영역: 에너지 정책의 유턴
OBBBA는 이전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경제적 족쇄’로 규정하고,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180도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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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A의 폐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핵심이었던 전기차 구매 보조금, 태양광 패널 등 청정에너지 설비 투자 세액공제를 조기 종료하거나 폐지했다. 이는 관련 산업 생태계에 거대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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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독립’으로의 회귀: 석유, 가스 등 전통적인 화석 연료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연방 소유 토지의 임대를 확대하고 관련 환경 규제를 완화했다. 이는 단기적인 에너지 가격 안정과 국내 산업 보호를 우선시하는 실리주의적 접근이다.
3부 활용 방안: OBBBA 시대 생존 가이드
이 거대한 법안은 이제 현실이다. 그렇다면 개인, 기업, 그리고 각국 정부는 이 변화의 물결 속에서 어떻게 기회를 찾고 위험을 관리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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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납세자: 2025년 소득 신고부터 신설된 공제 항목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서비스직 종사자는 팁 소득을, 현장 근로자는 초과근무 수당을 정확히 신고하여 공제 혜택을 극대화해야 한다. 자녀가 있다면 ‘트럼프 계좌’ 개설을 고려해 볼 만하다. 반면, 메디케이드나 SNAP 수혜자는 강화된 자격 요건을 충족하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해야 혜택이 중단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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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영구화된 감세 조치는 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한다. 특히 미국 내에서 연구개발(R&D)이나 설비 투자를 계획하는 기업에게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등 친환경 관련 기업들은 보조금 축소에 따른 사업 전략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라는 압박 또한 거세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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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정부(특히 한국): OBBBA는 동맹국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IRA 보조금을 기반으로 미국 시장 진출을 계획했던 한국의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리스 등 상업용 차량에 대한 예외 조항마저 사라지면서 새로운 수출 전략 마련이 시급해졌다. 반면, 미국 내 반도체 설비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은 강화되어, 관련 한국 기업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4부 심화 분석: 논쟁과 미래
OBBBA는 단순한 법을 넘어 미국 사회의 미래를 건 거대한 실험이다. 이 법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미 의회예산처(CBO)는 OBBBA가 향후 10년간 약 3.4조 달러의 재정 적자를 추가로 발생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막대한 감세가 국가 부채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경고다. 또한, 감세 혜택이 주로 고소득층과 기업에 집중되어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거세다. 복지 예산 삭감으로 약 1,000만 명이 건강보험을 잃고 저소득층의 삶이 더욱 팍팍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반면, 지지자들은 OBBBA가 과도한 규제를 철폐하고 세금 부담을 낮춰 기업의 투자와 개인의 소비를 촉진하는 ‘성장 사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강력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 그 과실이 결국 모든 계층에 돌아갈 것이라는 ‘낙수 효과’를 기대한다.
OBBBA의 최종 평가는 역사가 내릴 것이다. 이 법안이 미국을 다시 한번 ‘위대한 국가’로 만드는 동력이 될지, 아니면 사회적 갈등과 재정 위기를 심화시키는 기폭제가 될지는 앞으로의 수년이 결정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이미 OBBBA가 만들어 낸 새로운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