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0 23:44 시사
히말라야의 불쏘시개: 네팔 ‘Z세대’ 봉기의 해부와 전망
요약
2025년 9월 네팔을 휩쓴 ‘Z세대 봉기’는 정부의 소셜미디어(SNS) 차단 조치로 촉발되었으나, 그 본질은 수년간 누적된 체계적 부패, 만성적인 정치 불안, 그리고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대중적 분노의 폭발이었다. 본 보고서는 K.P. 샤르마 올리 정부의 급속한 붕괴 과정, 군의 개입으로 인한 안보 공백의 부분적 해소, 그리고 네팔이 직면한 불확실한 정치적 미래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주요 분석 결과는 이번 봉기에서 ‘Z세대’가 수행한 결정적 역할, 기성 정치권 전체의 회복 불가능한 정당성 상실, 그리고 향후 전개될 수 있는 주요 시나리오—험난한 헌법적 절차부터 초헌법적 임시정부 구성에 이르기까지—를 조명한다. 이 사태는 네팔의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으며, 그 여파는 향후 수년간 국내외 정책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제1부: 불꽃과 불쏘시개: 국가적 봉기의 해부
이번 네팔 사태는 정부의 SNS 차단이라는 단일 사건이 어떻게 한 나라 전체를 마비시키는 봉기로 번질 수 있었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이 불꽃이 거대한 화염으로 타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바싹 말라 있던 사회·정치적 ‘불쏘시개’ 때문이었다. 본 섹션은 위기를 촉발한 근본적인 조건들을 심층 분석하여, SNS 차단이 필연적인 분노의 폭발을 일으킨 기폭제에 불과했음을 규명한다.
1.1. 불안정의 유산: 공화국의 실패한 약속
2008년, 239년간 이어져 온 왕정을 폐지하고 연방 민주 공화국으로 전환한 네팔의 결정은 안정과 번영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담고 있었다.1 그러나 그 후 17년의 역사는 약속의 배신으로 점철되었다. 공화국 수립 이후 2025년 봉기 직전까지 총리가 14차례나 교체되었으며, 단 한 정부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1 이러한 만성적인 정치 불안은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단기적인 이익 추구와 정실주의가 만연하는 정치 문화를 고착시켰다.
이 과정에서 주요 정당들은 국가治理보다는 이권 추구에 몰두하는 ‘사실상의 마피아’처럼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5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리를 나눠 먹는 관행과 행정 및 경제 전반에 뿌리내린 부패는 기성 정치권 전체에 대한 구조적이고 누적된 불신을 낳았다.6 국민들은 공화국이 왕정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새로운 형태의 약탈적 엘리트 계층만을 탄생시켰다고 느끼게 되었고, 이는 정치 체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으로 이어졌다.
1.2. ‘네포 키즈’ 현상: 부패의 시각적 선언문
‘부패’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네포 키즈(Nepo Kids)‘—정치 엘리트의 자녀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폭로하는 SNS 트렌드를 통해 대중에게 매우 구체적이고 감정적인 실체로 다가왔다.8 틱톡(TikTok), 레딧(Reddit)과 같은 플랫폼에서는 외국 학위, 고급 자동차, 명품, 호화로운 휴가를 과시하는 정치인 자녀들의 모습과 평범한 네팔 국민들의 고단한 삶을 대조하는 영상과 사진이 바이럴처럼 퍼져나갔다.10
이러한 폭로는 대중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특히 한 장관의 아들이 루이비통과 까르띠에 명품 상자(추정가 26,000달러)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한 사진이나, 메르세데스-벤츠를 타는 모습은 1인당 국민소득이 1,400달러에 불과한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다.2
#NepoKid
, #NepoBabies
와 같은 해시태그는 부패한 기득권층에 대한 공공의 기소장 역할을 했다.11 부패의 결과물이 눈앞에 생생하게 전시되면서, 이는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닌 도덕적 타락과 배신으로 각인되었고, 특히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Z세대의 정의감을 강력하게 자극했다. 기득권층의 오만함이 스스로를 겨누는 무기가 된 셈이다.
1.3. 경제적 절망과 청년 소외: 미래 없는 세대
정치적 기능 장애는 네팔 경제의 깊은 구조적 취약성과 맞물려 있으며, 이는 국가의 미래인 청년층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네팔의 청년 실업률은 20~22%에 달하는 재앙적인 수준이다.2 국내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젊은이들은 매일 2,000명에서 많게는 5,000명에 이르는 규모로 중동이나 동남아시아의 저임금 일자리를 찾아 조국을 등지고 있다.10
이러한 대규모 노동 이주는 네팔 경제를 해외 송금에 위험할 정도로 의존하게 만들었다. 해외 노동자들이 보내오는 돈은 국가 GDP의 30% 이상을 차지하며, 수많은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는 젖줄이 되었다.13 이러한 맥락에서 페이스북, 왓츠앱과 같은 SNS 플랫폼은 단순한 소통 도구를 넘어, 해외 가족과의 유대를 유지하고 송금을 조율하는 필수적인 경제적 생명선 역할을 하고 있었다.8
이러한 경제적 절망감은 7,100만 달러 규모의 포카라 국제공항 횡령 사건이나, 취업 희망자들을 부탄 난민으로 위장시켜 돈을 가로챈 ‘가짜 난민 스캔들’과 같은 대형 부패 사건들로 인해 더욱 증폭되었다.11 엘리트들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반면, 청년들은 미래를 저당 잡힌 채 해외로 내몰리는 현실은 사회 전체에 깊은 박탈감과 분노를 심었다.
1.4. 기폭제: 잘못 계산된 디지털 억압
이처럼 사회적 불만이 임계점에 달해 있던 2025년 9월 4일, 네팔 정부는 페이스북, X(옛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26개의 주요 SNS 플랫폼 접속을 차단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단행했다.7 정부는 해당 플랫폼들이 새로운 규정에 따라 현지 법인 등록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공식적인 이유로 내세웠다.10 증오 발언과 가짜뉴스 확산을 막고 플랫폼의 책임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이었다.10
그러나 대중과 인권 단체들은 이를 온라인상에서 확산되던 반부패 운동과 ‘네포 키즈’ 폭로를 억누르기 위한 노골적인 검열 시도로 받아들였다.2 정부가 정치적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이러한 의심은 차단 조치의 선택성 때문에 더욱 증폭되었다. 현지 등록 의무를 준수한 중국계 기업 바이트댄스 소유의 틱톡은 차단 대상에서 제외되었는데, 이는 올리 정부의 친중국 성향과 맞물려 정부의 진짜 의도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키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11 정부는 정치적 반대 의견을 억제하려다 수백만 명의 경제적 생명선을 위협하는 우를 범했고, 이는 결국 정권의 붕괴를 초래하는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
제2부: ‘Z세대’의 반란: 시위의 타임라인과 역학
네팔 봉기는 Z세대가 주도한, 지도자 없는 분산형 운동이라는 뚜렷한 특징을 보였다. 본 섹션은 시위가 급격히 격화된 과정을 시간 순으로 추적하고, 이 새로운 형태의 사회 운동이 지닌 독특한 역학을 분석한다.
2.1. 디지털 권리에서 정권 교체로: 국가 폭력의 급진화 효과
시위대의 목표는 불과 24시간 만에 극적으로 변화했다. 9월 8일 시작된 첫 시위는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조직되었으며,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포함한 많은 참가자들은 “SNS가 아닌 부패를 차단하라”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SNS 차단 철회와 부패 척결을 요구했다.12 이때까지만 해도 시위의 요구는 정책 변경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포하여 최소 19명의 사망자를 낸 유혈 진압을 감행하자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2 국가가 비무장 시민, 특히 학생들을 살해했다는 사실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고, 시위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는 단순한 정책 실패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 국민을 적으로 돌린 국가 시스템 자체에 대한 저항으로 변모했다. 9월 9일, 시위대의 요구는 ‘타협 불가능한’ 수준으로 격상되었다. 의회 해산, 모든 국회의원의 총사퇴, 그리고 새로운 정부 구성이라는 요구는 사실상 현 정치 체제 전복을 목표로 하는 혁명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23 정부의 폭력적인 대응은 반대 목소리를 억누르기는커녕, 개혁 요구를 혁명으로 급진시키는 ‘가속제’ 역할을 한 셈이다.
2.2. 붕괴의 연대기 (2025년 9월 4일-10일)
네팔 정부의 붕괴는 전례 없는 속도로 진행되었다. 다음 표는 SNS 차단 조치 발표부터 군부의 질서 유지 개입까지, 위기가 절정으로 치달았던 일주일을 요약한 것이다. 이 타임라인은 정부의 연이은 실책과 폭력적인 대응이 어떻게 단 72시간 만에 정치 혁명을 압축적으로 이끌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날짜 | 주요 정부/정치권 활동 | 시위대 활동 및 요구 | 주요 결과 및 사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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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 (수) | 페이스북, X 등 26개 주요 SNS 플랫폼 접속 차단 조치 발효 11 | 온라인을 중심으로 시위 조직 시작. VPN 사용 급증. | - |
9월 8일 (월) | 경찰, 시위대에 최루탄, 물대포, 고무탄 및 실탄 발포.12 저녁 긴급 국무회의에서 SNS 차단 철회 결정.19 | 카트만두에서 수만 명 규모의 평화 시위 시작. 초기 요구는 ‘SNS 차단 철회’와 ‘부패 척결’.23 시위대 일부가 의회 진입 시도. | 최소 19명 사망, 347명 이상 부상.2 라메시 레카크 내무부 장관 사임.19 |
9월 9일 (화) | K.P. 샤르마 올리 총리 사임 발표.1 람 찬드라 파우델 대통령, 올리 총리 사임 수리 후 임시 총리로 재임명.6 | 시위, 전국적으로 격화. 의사당, 대통령궁, 총리 관저, 대법원, 주요 정당 당사 및 언론사 건물 방화.6 주요 정치인 자택 공격. 요구가 ‘의회 해산 및 총사퇴’로 격상.25 | 잘라나트 카날 전 총리의 부인, 자택 방화로 사망.6 농업부, 보건부 장관 등 추가 사임.23 카트만두 국제공항 폐쇄.19 |
9월 10일 (수) | 네팔군, 수도 카트만두 치안 장악 및 전국적 통행금지령 시행.10 대통령, 군 헬기로 대피.9 | 시위 지속, 일부 지역에서 산발적 충돌 발생. | 총 사망자 30명, 부상자 1,033명으로 증가.32 군부의 개입으로 수도 기능 일부 회복 시작. 카트만두 국제공항 운영 재개.32 |
2.3. 지도자 없는 운동의 해부
이번 봉기는 전통적인 위계 구조나 단일 지도자 없이 자발적이고 분산적으로 조직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5 초기 평화 집회는 ‘하미 네팔(Hami Nepal)‘이라는 NGO와 그 대표인 아닐 바니야(Anil Baniya) 등이 조직적 역할을 수행했지만, 이들이 운동 전체를 지휘한 것은 아니었다.13 시위가 격화되면서 수단 구룽(Sudan Gurung)과 같은 인물들이 운동의 상징적인 얼굴로 부상하기도 했다.30
이 운동은 특정 정치 이념보다는 부패 척결과 책임 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참여를 이끌어냈다. 카트만두의 래퍼 출신 시장인 발렌 샤(Balen Shah)와 같은 인기 있는 무소속 정치인들은 시위대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운동의 정당성을 더했다.25 일부 시위대는 기성 질서에 대한 거부를 상징하기 위해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해적 깃발을 사용하는 등, Z세대의 문화적 특징을 반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23 이러한 탈중심적 특성은 운동의 폭발적인 확산력을 이끌어냈지만, 향후 정치적 협상 국면에서는 통일된 대화 창구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제3부: 국가의 대응과 제도적 붕괴
네팔 정부와 안보 기관의 대응은 위기를 수습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며 국가 기능의 전면적인 붕괴를 초래했다. 본 섹션은 통치 엘리트의 치명적인 오판, 안보 대응의 실패,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권력 공백 상태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3.1. 연쇄적 오판: 통치 엘리트의 단절
올리 총리를 비롯한 정부 지도부의 공식적인 발언과 행동은 시위의 근본 원인과 대중의 분노 수준을 얼마나 치명적으로 오해하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올리 총리는 사임 직전, 이번 사태의 원인을 “충분한 정보 부족”과 “우리 Z세대와의 사고방식 차이에서 오는 약간의 모호함”으로 돌리며, 시위를 “수많은 사상자와 국가 재산 파괴를 낳은 불미스러운 상황”으로 규정했다.19
이 발언은 부패, 불평등, 경제적 절망이라는 핵심적인 불만을 단순한 ‘소통의 부재’나 ‘세대 차이’ 문제로 축소하려는 시도였다. 이는 통치 엘리트가 국민의 삶과 얼마나 철저히 단절되어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27 그들은 시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SNS 차단 해제나 일부 장관의 사임 같은 미봉책으로 분노를 잠재울 수 있다고 믿는 전략적 오판을 저질렀고, 이는 결국 정권의 완전한 붕괴로 이어졌다.
3.2. 안보 대응: 경찰력의 실패에서 군부 통제로
위기 초기, 네팔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해 시위를 통제하려 했다. 경찰은 최루탄, 물대포, 고무탄을 사용했으나, 시위대의 저항이 거세지자 결국 실탄 발포라는 최악의 수단을 선택했다.23 그러나 유혈 진압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분노를 촉발했고, 상황은 경찰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의사당과 대통령궁 등 국가 핵심 시설이 불타고, 경찰력이 사실상 무력화되자 네팔 정부는 마지막 수단으로 군대를 동원했다. 9월 10일, 네팔군은 수도 카트만두의 치안을 전면적으로 장악하고 전국적인 통행금지령을 시행하며 질서 회복에 나섰다.10 이는 네팔 국내 정치에서 군이 전면에 나서는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아쇼크 라즈 시그델 육군참모총장이 직접 대국민 성명을 통해 안정을 호소하는 등, 군부는 붕괴된 민간 정부를 대신해 사실상의 통치 기구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6
3.3. 정치적 공백: 머리 없는 국가
유혈 사태와 시위 격화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정부는 급속도로 와해되었다. 라메시 레카크 내무부 장관, 람 나트 아디카리 농업부 장관, 프리트비 수바 구룽 통신부 장관 등 핵심 각료들이 연이어 사임했다.19 결국 9월 9일, K.P. 샤르마 올리 총리가 사임을 발표하면서 행정부의 수장이 사라졌다.1
람 찬드라 파우델 대통령은 올리의 사임을 수리하면서도 권력 공백을 막기 위해 그를 임시 총리로 재임명하는 조치를 취했다.6 그러나 이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대통령 자신도 시위대를 피해 군 헬기를 이용해 대통령궁을 탈출, 군 시설로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9 국가원수와 행정수반이 모두 정상적인 통치 기능을 상실하면서 네팔은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 즉 권력 공백 상태에 빠졌다. 군의 개입은 이러한 공백을 물리적으로 메우기 위한 조치였으나, 이는 민간 공화정 통치의 일시적 중단을 의미했다. 군부는 단기적인 안정화 세력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네팔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었으며, 이는 새로운 위험의 시작이기도 하다.
제4부: 국내외적 파장
이번 봉기는 네팔 사회와 경제에 즉각적이고 파괴적인 충격을 가했으며,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위치에 있는 네팔의 대외 관계에도 중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본 섹션은 사태가 남긴 인적·물적 피해, 주변 강대국들의 신중한 반응, 그리고 국제사회의 규탄 목소리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4.1. 사회·경제적 충격파: 인적·물적 비용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과 혼란은 네팔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9월 10일까지 공식 집계된 사망자는 최소 30명에 달했으며, 1,033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해 전국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32 이는 수십 년 만에 네팔에서 발생한 최악의 유혈 사태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물적 피해 역시 막대했다. 시위대는 의사당, 대법원, 총리실 등 국가 통치의 상징적인 건물들을 불태웠고, 이로 인해 행정 및 사법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었다.6 이러한 국가 핵심 인프라의 파괴는 단기적인 혼란을 넘어 장기적인 국가 재건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경제 활동은 전면 중단되었다. 수도 카트만두의 트리부반 국제공항이 폐쇄되면서 관광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고,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과 자국민의 발이 묶였다.19 상점과 기업들이 문을 닫으면서 경제는 마비 상태에 빠졌다. 사회 질서의 붕괴는 교도소의 집단 탈옥 사태로 이어지는 등 심각한 치안 공백을 야기했다.39
4.2. 지정학적 체스판: 베이징과 뉴델리의 신중한 반응
중국과 인도 사이에 위치한 네팔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양국은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의 대응은 영향력 확대보다는 자국 국경의 안정 유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기존의 정치 세력 중 어느 편도 들 수 없는 ‘지도자 없는 봉기’의 특성상, 섣부른 개입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불안정한 네팔이 자국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는 것이 양국의 공통된 단기 목표가 된 것이다.
행위자 | 공식 성명 및 조치 | 전략적 함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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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 국경수비대(SSB) 경계 태세 격상, 자국민 대상 네팔 여행 자제 및 외출 금지 권고 19 | 네팔의 불안정이 인도 국경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초점. 전통적인 영향력을 유지하되, 특정 세력을 지지하기보다는 안정 회복을 우선시. |
중국 | 네팔의 모든 당사자가 “국내 문제를 적절히 처리”하고 “조속히 사회 질서와 국가 안정을 회복하기를 희망한다”는 원론적 입장 표명. 자국민 안전 유의 당부 43 | 친중 성향의 올리 총리 실각으로 인한 정치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개입을 자제하며 내정 불간섭 원칙을 강조. 혼란이 자국의 일대일로 사업 등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 |
UN | 사무총장 및 인권최고대표, 유혈 사태에 “충격”과 “경악”을 표하며 “불필요하고 불균형한 무력 사용”을 규탄. 신속하고 투명한 독립적 조사 촉구 12 |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적 책임을 강조하며, 향후 구성될 네팔 정부에 인권 존중과 법치주의 회복을 압박하는 역할. |
국제 인권 단체 | 국제앰네스티, 국제인권연맹(FIDH) 등, 치명적인 무력 사용을 강력히 규탄하며, 책임자 처벌과 평화적 집회 및 표현의 자유 보장 요구 30 | 네팔 정부의 폭력적 진압에 대한 국제 여론을 형성하고, 향후 과도기 과정에서 시민 사회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압력을 가하는 역할. |
4.3. 국제 사회의 반응: 규탄과 책임 요구
국제 사회, 특히 UN과 주요 인권 단체들은 네팔 정부의 폭력적인 시위 진압을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과 폴커 튀르크 UN 인권최고대표는 시위대 사망에 깊은 충격과 우려를 표하며, 네팔 당국의 “불필요하고 불균형한 무력 사용”을 비판했다.12 이들은 모든 폭력 행위에 대한 신속하고 투명하며 독립적인 조사를 촉구하며, 평화적 집회와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앰네스티와 국제인권연맹(FIDH) 역시 성명을 통해 치명적인 무력 사용을 강력히 비난하고, 유혈 사태에 대한 책임 규명을 요구했다.6 이러한 국제적 압력은 향후 네팔의 과도 정부가 인권 문제와 과거사 청산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제5부: 기로에 선 네팔: 시나리오, 리스크, 그리고 전략적 전망
기성 정치 질서가 붕괴하고 시위대가 의회 자체를 불신하는 상황에서 네팔은 전례 없는 불확실성 앞에 놓여 있다. 본 섹션은 네팔이 나아갈 수 있는 잠재적 경로를 분석하고, 주요 리스크를 식별하며, 전략적 전망을 제시한다.
5.1. 앞으로의 길: 정치적 미래 구상
네팔의 미래를 결정할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으며, 각각은 상당한 난관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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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적 절차: 2015년 헌법은 의회 내에서 새로운 총리를 선출하는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49 그러나 시위대가 의회와 기성 정당 전체를 부패와 무능의 상징으로 간주하고 그 정당성을 부정하는 상황에서, 이 경로를 통한 정부 구성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49 이는 또 다른 정치적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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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정부 구성: 전문가들과 시위대 사이에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방안은 헌법의 틀을 일시적으로 벗어난 초헌법적 임시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다.2 전직 대법관이나 시민 사회의 신망 받는 인사들이 이끄는 이 정부는 6개월에서 1년 내에 새로운 선거를 실시하고, 헌법 개정 논의를 주도하는 과도기적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이는 법적 정당성 문제가 있지만, 현 위기를 타개할 가장 현실적인 해법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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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개정 또는 재제정: 이번 봉기의 근본적인 요구 중 하나는 현행 헌법을 개정하거나 전면 재작성하여 보다 책임성 있는 정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49 특히 총리 직선제 도입과 같은 권력 구조 개편 요구가 높다. 이는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으나,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은 길고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5.2. 새로운 주체의 부상?: 신뢰할 수 있는 리더십을 찾아서
기성 정치권에 대한 전면적인 불신은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들이 부상할 수 있는 공간을 열었다. 특히 청년층의 지지를 받는 인물들이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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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 샤(Balen Shah): 35세의 래퍼 출신 무소속 카트만두 시장으로, 기성 정치에 대한 비판적 입장과 실용적인 시정 운영으로 청년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34 그는 이번 시위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차세대 지도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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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 라미차네(Rabi Lamichhane): 전직 언론인 출신으로, 2022년 정계에 입문해 자신의 정당을 창당한 인물이다. 그의 대중적 인기는 시위대가 그를 교도소에서 구출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강력하다.39
이들 신진 인사가 과도기 정부나 향후 정치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가 네팔 정치의 세대교체를 가늠할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5.3. 왕정의 유령
공화국 체제에 대한 깊은 환멸은 과거 왕정에 대한 일부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2025년 초, 수도 카트만두에서는 기안넨드라 전 국왕의 복위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4 그러나 이는 민주 제도에 대한 불신이 표출된 현상일 뿐, Z세대가 주도하는 이번 봉기의 핵심 요구는 아니다.34 왕정 복귀는 현재로서는 소수의 의견이며, 가까운 미래에 실현 가능한 정치적 대안이 될 가능성은 낮다.
5.4. 전략적 리스크와 전망
네팔의 앞날은 수많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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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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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 불안정: 신뢰할 수 있는 과도 정부 수립에 실패할 경우, 권력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추가적인 폭력 사태와 국가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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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붕괴: 인프라 파괴, 정치적 불안 지속, 그리고 자본 유출은 이미 취약한 네팔 경제를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넣고 인도주의적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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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적 반동: 현재 안정화 역할을 하는 군부가 민간 정치 세력의 합의 실패를 빌미로 영구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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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 개입 심화: 약화된 네팔 정부는 원조와 정치적 지지를 대가로 전략적 양보를 요구하는 인도와 중국의 영향력에 더욱 취약해질 것이다.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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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네팔의 단기적 미래는 지도자 없는 시위대가 얼마나 신속하게 통일된 협상단을 구성할 수 있는지, 그리고 군부와 잔존 국가 기관들이 과도기적 해법을 찾기 위한 대화에 얼마나 진정성 있게 임하는지에 달려 있다. 국제 사회는 이러한 대화를 촉진하고, 원조 제공을 책임 있는 민주적 절차 복원과 연계함으로써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번 ‘Z세대’ 봉기는 네팔의 낡은 정치 모델을 돌이킬 수 없이 파괴했다. 이제 잿더미 위에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네팔 국민 앞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