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8 02:57

안개의 항해: 현대 경제학에서의 불확실성에 대한 종합적 분석

서론: 미지의 것에 대한 영원한 도전

불확실성은 현대 경제 모델의 부수적 요소가 아니라, 그 중심을 관통하는 본질적 특징이다. 세계화, 급격한 기술 변화, 팬데믹과 같은 시스템적 충격, 그리고 새로운 지정학적 경쟁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불확실성은 주기적인 우려를 넘어 구조적인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경제 주체들은 이제 단순히 경기 순환의 변동성을 넘어, 미래의 규칙 자체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근본적인 모호함에 직면해 있다.

본 보고서는 경제학에서 불확실성이 어떻게 개념화되었는지 그 지적 토대를 탐구하고, 이것이 기업, 가계, 금융시장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을 분석한다. 나아가 불확실성을 측정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딜레마를 조명하며, 팬데믹과 지정학적 갈등이라는 현대적 사례를 통해 그 복합적인 양상을 심층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이를 통해 본 보고서는 21세기 경제 환경을 항해하는 데 있어 불확실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왜 필수적인지를 역설하고자 한다.


제1부: 경제적 불확실성의 지적 토대

경제학자들이 미지의 영역을 어떻게 개념화하고 이론으로 발전시켜 왔는지 그 지적 계보를 추적하는 것은 불확실성 논의의 출발점이다. 이는 단순한 정의의 문제를 넘어,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여준다.

제1.1절 나이트적 구분: 위험과 진정한 불확실성의 분리

경제학에서 불확실성에 대한 현대적 논의는 1921년 프랭크 나이트(Frank Knight)의 저서 『위험, 불확실성, 그리고 이윤』에서 시작된다. 그는 미래에 대한 무지를 두 가지 명확히 구분되는 개념으로 나누었다.1

  • 위험 (Risk): 미래의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발생 가능한 모든 결과의 확률 분포는 알려진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통계적으로 계산 가능하며, 보험 등을 통해 관리될 수 있다.1 예를 들어,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공장 화재 발생 확률은 ‘위험’의 영역에 속한다.

  • 불확실성 (Uncertainty): 미래의 결과뿐만 아니라, 그 결과들이 나타날 확률 분포조차 알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계량화가 불가능하며 측정할 수 없는 근본적인 모호함이다.1 예를 들어, 완전히 새로운 혁신 기술의 장기적인 상업적 성공 가능성은 ‘불확실성’에 해당한다.

나이트의 핵심 주장은 진정한 기업가적 이윤의 원천이 바로 이 측정 불가능한 ‘불확실성’에 있다는 것이다. ‘위험’은 계산을 통해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항해하는 것은 기업가의 고유한 기능이며, 그들이 얻는 이윤은 이러한 보험 불가능한 모호함을 인수한 데 대한 보상이라는 것이다.4 이는 자본이나 노동에 대한 단순한 수익을 넘어선 이윤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했다.

물론 모든 학자가 나이트의 상호 배타적인 구분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더그 허바드(Doug Hubbard)와 같은 일부 사상가들은 ‘위험’을 더 넓은 범주인 ‘불확실성’ 중에서 확률적으로 표현 가능한 부분집합으로 보기도 한다.6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개념적 논의의 깊이를 보여준다.

제1.2절 케인스와 경제적 결정의 심리학

나이트가 철학적 구분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불확실성을 거시경제의 중심으로 가져와 그 현실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을 파고들었다. 케인스에게 장기적인 미래는 근본적으로 알 수 없는 영역이었으며, 이는 투자 수익에 대한 정밀한 수학적 계산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심연과 같은 불확실성 앞에서, 케인스는 투자 결정이 합리적이고 확률적인 예측이 아닌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했다.7 이는 비관론이나 낙관론의 파도에 휩쓸려 나타나는, 계산보다는 행동에 대한 자발적 충동이다.8 이 개념은 경제를 합리적 행위자들의 자기조정 시스템으로 보았던 고전학파의 견해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케인스의 유명한 경구,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는 단순히 냉소적인 표현이 아니다. 이는 현재의 불확실한 현실을 무시하고 멀리 있는 예측 가능한 균형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제 모델에 대한 깊은 방법론적 비판이다.9 그는 불확실성 때문에 경제가 장기간의 실업 상태에 머물 수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10

제1.3절 행동경제학 혁명: 전망이론과 인지 편향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가 개발한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은 케인스가 거시적으로 묘사한 행동의 미시적 토대를 제공했다. 이 이론은 합리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넘어, 실제 인간이 불확실성 하에서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는지를 심리학적 실험을 통해 규명했다.13

전망이론의 핵심은 ‘가치 함수(value function)‘와 ‘확률 가중 함수(probability weighting function)‘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구성된다.

  • 가치 함수: 이 함수는 세 가지 핵심적인 심리적 현실을 설명한다.16

    1. 준거점 의존성(Reference Dependence): 사람들은 결과를 절대적 가치가 아닌, 특정 준거점(예: 현재 자산)을 기준으로 한 변화(이득 또는 손실)로 평가한다.16

    2. 민감도 체감성(Diminishing Sensitivity): 이득이나 손실의 절대적 크기가 커질수록 변화에 대한 주관적 민감도는 점차 감소한다.

    3. 손실 회피성(Loss Aversion):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사람들은 같은 크기의 이득에서 얻는 기쁨보다 손실에서 느끼는 고통을 훨씬 더 크게 느낀다. 가치 함수는 이득 영역보다 손실 영역에서 훨씬 더 가파른 기울기를 보인다.16 이는 왜 사람들이 이득이 확실할 때는 위험을 회피하려 하지만, 손실이 확실할 때는 그 손실을 피하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지를 설명한다.

  • 확률 가중 함수: 이 함수는 사람들이 확률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체계적으로 왜곡하는 경향을 설명한다. 사람들은 매우 낮은 확률은 과대평가(복권 구매의 심리)하고, 상당히 높은 확률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16 이는 확률을 액면 그대로 사용하는 기대효용이론의 가정과 명백히 배치된다.

이 두 함수의 결합, 즉 전망의 가치 는 전통적인 경제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현실 세계의 선택들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강력한 모델을 제공한다.21

나이트가 제시한 근본적 불확실성의 개념은 케인스에 이르러 거시경제의 핵심 변수인 투자 결정의 비합리성을 설명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이후 행동경제학은 이러한 비합리성이 발생하는 구체적인 심리적 기제, 즉 손실 회피나 확률 왜곡과 같은 인지 편향을 규명함으로써 케인스의 ‘야성적 충동’에 구체적인 내용을 부여했다. 이처럼 불확실성에 대한 지적 탐구는 철학적 구분에서 거시경제적 함의로, 다시 심리학에 기반한 미시적 토대로 점차 심화되어 왔다.

표 1: 불확실성 이론의 비교 분석

프레임워크주요 사상가핵심 개념주요 함의
나이트적 불확실성프랭크 나이트위험(Risk): 확률 분포가 알려진 불확실성 불확실성(Uncertainty): 확률 분포를 알 수 없는 불확실성진정한 기업가적 이윤은 측정 불가능한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다.
케인스적 불확실성존 메이너드 케인스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 근본적 불확실성 하에서 투자 결정은 합리적 계산이 아닌 심리적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불확실성으로 인해 시장은 스스로 균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으며,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
행동경제학 (전망이론)대니얼 카너먼, 아모스 트버스키가치 함수: 준거점 의존성, 손실 회피성 확률 가중 함수: 낮은 확률의 과대평가, 높은 확률의 과소평가인간의 의사결정은 체계적인 인지 편향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는 전통적 합리적 인간 모델의 한계를 보여준다.

제2부: 불확실성의 거시경제적 발자취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이제 불확실성이 기업과 가계의 구체적인 의사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거시경제 전반에 어떠한 흔적을 남기는지 실증적으로 분석한다.

제2.1절 기업 투자: ‘관망 효과’의 마비

불확실성이 기업 투자에 미치는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의사결정의 ‘지연’이다. 이러한 현상은 ‘실물옵션이론(Real Options Theory)‘을 통해 정교하게 설명될 수 있다.

실물옵션이론에 따르면, 한번 실행하면 되돌리기 어려운(즉, 매몰비용이 큰) 투자의 경우, 불확실성은 ‘기다림의 가치(value of waiting)‘를 창출한다.22 기업은 불확실한 미래가 좀 더 명확해질 때까지 투자를 집행할 수 있는 ‘옵션’을 보유하게 되며,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이 옵션의 가치는 커진다. 따라서 불확실성이 증대되면 기업이 투자를 연기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공포가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24

한국 경제 데이터는 이러한 이론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 경제의 불확실성은 기업의 설비투자를 위축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27 특히 투자의 비가역성이 큰 대규모 투자일수록 그 부정적 효과는 더욱 민감하게 나타난다.27

  • 이러한 부정적 상관관계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간에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는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충격이 한국 기업들의 위험기피 성향을 구조적으로 높이고, 경영 방식을 보수적으로 변화시켰음을 시사한다.28

  • 높은 불확실성은 현금흐름과 투자의 전통적인 연결고리를 끊어버릴 수 있다. 기업들이 풍부한 내부 유보 자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불투명하면 투자를 단행하기보다 현금을 축적하는 길을 택한다.27 이는 투자의 발목을 잡는 것이 단순한 자금 제약이 아님을 보여준다.

제2.2절 가계 행동: 예비적 저축과 소비 절벽

불확실성은 가계의 소비와 저축 패턴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미래 소득이나 고용 안정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 위험을 회피하려는 가계는 미래의 어려움에 대비하기 위해 현재의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게 된다. 이를 ‘예비적 저축 동기(precautionary saving motive)‘라고 한다.29

  • 한국의 시계열 자료를 이용한 연구들은 국민소득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때 현재 소비가 감소하고 저축이 증가하는 예비적 저축 효과가 실제로 존재함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30

  • 이러한 가계의 반응은 총수요를 감소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며, 경기 침체를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다. 불확실성 증가 → 소비 감소 → 경기 악화 → 불확실성 재증가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30

  • 소득 불확실성뿐만 아니라,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 가격의 변동성이나 미래의 차입 여건에 대한 불확실성 역시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29

제2.3절 금융시장: 미지의 것에 가격 매기기

금융시장은 불확실성이 실물경제로 전파되는 핵심적인 통로다. 불확실성은 금융자산의 가격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 위험 프리미엄과 자금조달 비용: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투자자들은 더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하게 된다. 이는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 상승으로 직결되어 신규 투자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32 불확실성을 회피하려는 투자자들은 불확실성이 높은 주식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며, 이는 해당 주식의 기대수익률에 영향을 미친다.36

  • 자산 가격 변동성: 불확실성은 주가, 환율 등 주요 금융 변수의 변동성을 증폭시킨다. 이러한 변동성 자체가 또 다른 불확실성의 원천이 되어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실물경제의 불안정성을 높인다.34

  • 정책 불확실성의 영향: 특히 통화정책, 재정정책, 외환정책 등 정부 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불확실성은 주가를 하락시키고 원화 가치를 절하(환율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37

제2.4절 총체적 영향: 성장 둔화와 경기 침체

기업, 가계, 금융시장에서 나타나는 미시적 반응들은 거시경제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불확실성은 단순한 경기 침체의 결과물이 아니라, 경기 침체를 유발하고 심화시키는 능동적인 요인이다.

  • 벡터자기회귀(VAR) 모형을 이용한 실증분석에 따르면, 거시경제 불확실성에 충격이 발생할 경우, 생산(GDP)과 물가상승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에 대한 부정적 영향은 약 6개월간 지속될 수 있다.31

  • 이러한 분석은 불확실성이 경기 순환의 핵심적인 동인임을 시사한다. 불확실성은 경기 하강을 증폭시키고 회복을 더디게 만든다.33

  • 단기적인 경기 순환을 넘어, 만성적인 불확실성은 한 경제의 장기 성장 잠재력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를 저해하고, 신규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으며, 자본과 노동의 효율적 배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32

결론적으로, 불확실성은 경제 시스템 내에서 강력한 자기증식적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외부 충격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기업은 투자를 멈추고 가계는 지갑을 닫는다. 이는 총수요의 급격한 위축으로 이어져 실물경제를 악화시키고, 이는 다시 초기 우려를 현실로 만들며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 메커니즘은 경기 침체가 왜 깊고 길어질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고리다.

표 2: 불확실성 증가가 주요 거시경제 변수에 미치는 영향

거시경제 변수불확실성 증가의 영향핵심 메커니즘관련 자료
기업 투자감소 (투자 지연 또는 취소)실물옵션이론: 투자의 비가역성으로 인한 ‘관망 효과’ 증대27
가계 소비감소예비적 저축 동기: 미래 소득 불확실성에 대비한 저축 증가29
GDP 성장률하락투자 및 소비 위축으로 인한 총수요 감소, 자원 배분 비효율성31
물가상승률하락 (단기)총수요 위축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압력31
금융시장 변동성증가위험 프리미엄 상승, 안전자산 선호 심화34

제3부: 불확실한 세계에서의 측정과 정책

불확실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면, 이를 어떻게 측정하고 정책적으로 대응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과제가 남는다. 이 장에서는 불확실성을 계량화하려는 시도와 불확실성 시대의 정책적 딜레마를 다룬다.

제3.1절 모호함의 계량화: 경제정책 불확실성(EPU) 지수

추상적인 개념이었던 불확실성을 실증 분석의 영역으로 끌어온 획기적인 방법론 중 하나가 바로 스콧 베이커, 니콜라스 블룸, 스티븐 데이비스가 개발한 ‘경제정책 불확실성(Economic Policy Uncertainty, EPU) 지수’이다.40

이 지수는 방대한 양의 뉴스 기사 텍스트 데이터를 분석하여 ‘경제(Economy)’, ‘정책(Policy)’, ‘불확실성(Uncertainty)‘과 관련된 키워드가 동시에 등장하는 기사의 빈도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산출된다.40 구체적인 산출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각 언론사별로 EPU 관련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의 월별 상대 빈도를 계산한다.

  2. 계산된 빈도를 각 언론사 자체의 표준편차로 나누어 표준화한다.

  3. 표준화된 값들을 언론사 간에 월별로 평균을 낸다.

  4. 이 평균값을 다시 전체 기간의 평균으로 나누고 100을 곱하여, 평균이 100인 지수로 정규화한다.40

EPU 지수는 경제 전문가와 정책 입안자들이 정책 관련 불확실성의 추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이를 변수로 사용하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로 자리 잡았다.41 이는 불확실성이라는 개념을 경험적으로 다룰 수 있게 만든 중요한 방법론적 진보다.

제3.2절 안갯속의 통화정책: 무뎌진 수단과 소통의 과제

높은 불확실성은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통화정책(기준금리 조정) 효과를 약화시킨다. 금리, 신용, 자산 가격 등 정책의 파급 경로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43 예를 들어,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기업들은 ‘관망 효과’ 때문에 투자를 늘리지 않고, 가계는 ‘예비적 저축 동기’로 인해 소비를 늘리지 않을 수 있다.34

실증 연구에 따르면, ‘통화정책 불확실성’ 그 자체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통화정책의 향방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 생산이 위축되고,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상승하며, 주가가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37

이처럼 금리 조정의 직접적인 효과가 무뎌지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시장의 기대를 관리하고 불확실성을 직접적으로 줄이기 위해 ‘커뮤니케이션’과 ‘선제적 안내(forward guidance)‘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한국은행이 최종금리 수준에 대한 조건부 선제적 안내를 시행한 것은 통화정책 불확실성을 축소하는 데 기여한 사례로 평가된다.45 하지만 이는 동시에 중앙은행의 신뢰도와 소통 방식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기도 한다.48

제3.3절 재정정책 역할의 변화

불확실성은 재정정책의 효과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 효과 증대 가능성: 극심한 경기 침체와 높은 불확실성으로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이 제로금리 하한에 묶여 있을 때, 재정정책의 효과는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정부지출이 이자율을 상승시켜 민간 투자를 밀어내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가 민간 투자가 이미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는 약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49

  • 효과 감소 가능성: 반대로, 미래의 재정정책(예: 현재의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미래의 증세)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을 경우, 이는 그 자체로 민간의 경제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 정부의 정책이 일관성이 없거나 지속 불가능하다고 인식되면, 지출 확대의 긍정적 효과가 정책 불확실성으로 인한 부정적 효과에 의해 상쇄될 수 있다.32 미국의 무역정책 불확실성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이러한 정책 불확실성의 파급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52

결론적으로, 불확실성의 시대는 경제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정책의 초점이 단순히 금리나 지출 규모와 같은 양적 수단을 조작하는 것에서, 대중의 인식과 기대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이동해야 한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정책 커뮤니케이션은 부수적인 활동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핵심적인 정책 도구가 된다.


제4부: 현대적 불확실성의 사례 연구

본 보고서의 분석 틀을 현대 세계를 규정하는 두 가지 결정적인 불확실성의 원천에 적용하여, 그 구체적인 양상과 함의를 탐색한다.

제4.1절 팬데믹 쇼크: 코로나19의 교훈

코로나19 팬데믹은 전례 없는 불확실성의 원천이었다. 이는 공급(봉쇄, 공급망 붕괴, 노동력 부족)과 수요(이동성 감소, 소비 패턴 변화)에 동시에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공중 보건의 결과와 정책 대응의 향방에 대한 막대한 불확실성을 야기했기 때문이다.53

  • 경제 붕괴의 동력: 2020년 초 불확실성의 폭발적인 증가는 초기 경제 붕괴의 핵심 동력이었다. 분석에 따르면, 봉쇄의 직접적인 효과와는 별개로, 불확실성 충격 그 자체가 GDP, 고용, 임금의 초기 하락분 중 상당 부분(최대 절반가량)을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53

  • 인플레이션의 동학: 팬데믹 이후의 상황은 불확실성이 공급 충격과 결합하여 복잡한 인플레이션 동학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초기에는 불확실성이 수요를 억제하여 디플레이션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경제가 재개되면서 억눌렸던 수요, 지속적인 공급망 병목 현상, 노동 시장의 불확실성이 결합되면서 정책 당국이 예측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인플레이션 급등을 초래했다.53

제4.2절 지정학적 단층선: 상호의존의 경제적 무기화

지정학적 경쟁은 이제 시장 기반의 불확실성과는 질적으로 다른, 구조적이고 지배적인 불확실성의 원천이 되었다. 이는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한 국가의 의도적인 정책에 의해 추동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 사례 1: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 전쟁은 세계 에너지 및 식량 시장에 막대한 불확실성을 야기하여 가격 급등과 공급망 혼란을 초래했다.56 또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다국적 기업의 위험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많은 서방 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해야만 했다.60 이는 지정학적 사건이 수년간의 투자를 하루아침에 무가치하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사례 2: 미중 경쟁: 양국 간의 경쟁은 단순한 무역 관세를 넘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술 패권 경쟁으로 심화되었다.61 미국의 수출 통제 및 투자 제한과 같은 정책은 글로벌 기술 공급망에 심대한 불확실성을 야기한다. 이는 설계(미국), 제조(한국/대만), 조립 및 시장(중국)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반도체 산업 생태계에 특히 치명적이다.64 한국과 같은 국가들은 미래의 시장 접근성과 기술 표준에 대한 엄청난 불확실성 속에서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으며, 이는 결국 비용이 많이 드는 글로벌 기술 생태계의 분절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모든 현상의 기저에는 ‘상호의존의 무기화(weaponization of interdependence)‘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리 잡고 있다. 즉, 과거 안정성의 원천으로 여겨졌던 깊은 경제적 연결이 이제는 잠재적 취약점이자 국가 전략의 도구로 변모한 것이다.62

코로나19 팬데믹이나 지정학적 갈등과 같은 현대적 불확실성의 원천은 시장 내부의 경기 순환이 아닌 외부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충격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충격은 계량화가 훨씬 어려운 ‘깊은’ 불확실성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응은 단기적인 경기 부양을 넘어, 예측 불가능한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경제 구조, 즉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구축하는 장기적 전략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는 공급망 다변화, 전략적 비축, 기술 주권 확보 등 전통적인 경제 정책의 범주를 넘어서는 과제를 포함한다.


결론: 만연한 불확실성의 시대, 회복탄력성 구축을 향하여

본 보고서는 나이트와 케인스의 추상적인 이론적 구분에서부터 오늘날 중앙은행 총재와 기업 CEO가 직면한 구체적인 도전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에서 불확실성이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분석을 통해 명확해진 사실은, 불확실성이 제거해야 할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경제 환경의 영구적인 특징이라는 점이다.

불확실성은 기업의 투자를 마비시키고, 가계의 소비를 위축시키며,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증폭시켜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특히 팬데믹과 지정학적 갈등과 같은 현대적 충격은 그 근원이 경제 외부에 있고 그 파급 효과가 구조적이어서, 전통적인 경기 순환 모델로는 예측하고 대응하기 어렵다. 이러한 환경은 정책 결정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정책의 효과가 불확실성으로 인해 무뎌지는 상황에서,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커뮤니케이션’은 그 자체로 핵심적인 정책 도구가 된다.

궁극적으로 21세기 경제 주체와 정책 입안자들의 핵심 과제는 완벽한 예측이라는 헛된 추구를 넘어서는 것이다. 대신,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하여 견고하고, 적응력 있으며, 회복탄력적인 시스템을 기업, 금융, 국가 차원에서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안갯속을 항해하는 최선의 방법은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상 조건에서도 항로를 유지할 수 있는 튼튼한 배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